자동차이야기/자동차와 생활

자동차 발전의 혁신을 가져다 준 자동차왕 '헨리 포드'

자동차 발전의 혁신을 가져다 준 자동차왕 '헨리 포드'

 

오늘은 '자동차왕'이라는 대명사로 불리며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헨리 포드와 그가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T형 포드' 모델, 헨리 포드가 이룬 자동차의 대중화로 인해 미국 최고의 석유재벌에 이르렀던 '록펠러'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헨리포드(Henry Ford : 1863 ~ 1947)

  

<출처 : 100qualityquotes.wordpress.com>

 

'자동차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는 세계적인 자동차회사 '포드'의 창설자로 근대적 대량생산방식에 의해 자동차를 대중화시킨 장본인인 동시에 자동차시대를 개척한 인물이에요.

 

1863년 7월 30일 미국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서 얼마 떨어진 디어번의 시골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포드는 소년시절부터 기계에 흥미를 가져 학업을 중단하고 15세 때 기계공이 돼 자동차 제작에 몰두했는데요, 디트로이트의 작은 기계 공장에 들어가 직공으로서 기술을 배웠고, 5년 후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돌보면서 공작실을 만들어 연구를 계속했으며, 1890년 에디슨 조명 회사 기사로 초청돼 근무하던 중 내연 기관을 완성해 1892년 자동차를 만들었답니다.

 

 

<출처 : www.carnections.com>

 

그 후 1903년 동업자와 함께 자본금 10만 달러로 '포드자동차회사'를 설립, 1908년에는 세계 최초의 양산대중차인 'T형 포드'의 제작을 개시했어요.

그는 특히 경영지도원리로써 미래에 대한 공포와 과거에 대한 존경을 버릴 것, 경쟁을 위주로 일하지 말 것, 봉사가 이윤에 선행할 것, 값싸게 제조하여 값싸게 팔 것 등 4개의 봉사원칙을 내세웠는데요, 이를 포디즘(Fordism)이라고 한답니다.

 

 

<출처 : www.p10designstudio.com>

 

또한, 포드는 공장의 경영합리화를 위해 제품의 표준화, 부분품의 단순화, 작업의 전문화라는 '3S운동'을 전개하면서 이러한 원칙 달성을 목표로 '누드젠콘'이 창안한 '컨베이어 시스템'을 채용해 흐름작업조직으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하기도 했는데요, 이것을 바로 '포드 시스템'이라 칭한답니다.

 

1914년에는 최저임금 일급(日給) 5달러, 1일 8시간 노동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노동정책을 펼쳤는데요, 그의 산업철학은 제품가격의 인하로 판매량을 확대하고, 생산효율을 높이고 생산을 증대하여 가격을 더욱 낮춘다는 단순한 것이었어요.

 

자동차는 20세기의 발전이 남긴 주요 성과물 중 하나인데요, 그러한 자동차가 초기의 사치 품목으로 여겨지던 신세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 제품으로 변화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자동차왕 헨리 포드였답니다.

 

 

 

 

T형 포드(1908~1927)

  

<출처 : todaymade.com>

 

T형 포드는 헨리 포드가 설계해 1908년에 825달러의 가격에 처음 판매를 시작한 자동차인데요, 제작이 중단된 1927년까지 무려 1,500만 대 이상이 생산된 모델이에요.

 

T형 포드는 구조가 간단하고 견고한 것이 특징으로 20세기 후반까지도 도로상태가 불량하거나 포장이 안 된 여러 곳에서 계속 사용되었는데요, 이는 차체가 비교적 높아 상대적으로 이러한 도로에서 유리했기 때문이었답니다.

 

20마력 엔진에 강철 차대를 한 T형 포드는 시속 40km의 경제속도를 냈는데요, 헨리 포드는 T형 포드를 '다양한 다수를 위한 자동차'라 불렀어요. 또, '2천 달러 이하에 이보다 더 나은 자동차는 없으며, 2천 달러가 넘는 자동차도 겉치레를 빼면 이보다 더 낫지는 못합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대중적 자동차'라고 광고했답니다.

 

그만큼 T형 포드는 잘 만들어진 자동차였고 잘 팔리는 자동차였는데요, 포드는 대량 생산 방식을 개발하고 가다듬어 제작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 차대 조립 시간은 12시간 반에서 2시간으로, 1913년 말에는 40분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어요.

 

 

록 펠러(Rockefeller : 1839 ~ 1937)

 

<출처 : www.dailymail.co.uk>

 

'석유왕'으로 불리는 록펠러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손꼽히는 인물인데요, 19세기 중엽, 일찍이 석유정제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록펠러는 정유사업에 뛰어들어 1870년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창설했고, 공급 과잉으로 인해 석유가격이 떨어지자 경쟁사들을 사들여, 1882년 40여 개의 독립적인 기업들을 모아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했어요.

 

이처럼 록펠러가 '석유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헨리 포드가 주도한 자동차의 대중화가 큰 역할을 차지했는데요, 헨리 포드가 처음 자동차를 개발했을 때 많은 이들은 기차에 비해 생산단가는 비싸고 사람은 적게 태우는 자동차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대량생산의 도입과 함께 생산단가를 낮추면 자동차의 대중화는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일찍이 직감한 록펠러는 자동차의 연료가 되는 석유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죠.

 

록펠러는 이렇게 석유사업에서 생긴 거액의 이윤을 광산, 산림, 철도, 은행 등에 투자하여 거대 자본을 형성했지만, 석유, 철강, 철도 등은 물론 일반 생활소비재 시장까지도 독점하는 트러스트에 반대해 이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1911년 미국연방최고재판소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의 판결을 받아 해산되어 30개의 회사로 해체됐답니다.

 

이후 록펠러는 재계에서 은퇴하고 자선가로 변신했는데요, 1890년부터 1892년까지 거금을 기부해 시카고대학을 세웠으며, 1913년에는 '록펠러재단'을 설립해 병원, 교회, 학교 등 자선사업에 힘썼어요. 이 밖에도 일반교육재단, 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해 교육, 의학 연구 후원 사업에도 큰 기여를 했답니다.

 

 

 

 

 

 

 

지금까지 자동차 발전의 혁신을 가져다 준 자동차왕 '헨리포드'와 함께 미국의 석유재벌이자 '석유왕'으로 불리는 록펠러에 대해 알려드렸는데요, 크나큰 성공을 거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생각하는 부분에 가능성을 두고 긍정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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